2060년, 세계는 다시 시작되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넘쳐흐른 에너지가 흘러든 마지막 빈틈은 사람이었다.
능력자가 태어났고, 세계는 여전히 포화 속에 있다.

유로파

국가가 무너진 유럽은 가문이 다스린다. 자기 힘의 근원 끝까지 닿은 자만이 귀족이 된다. 그들은 바깥의 전쟁보다 안의 위계에 목숨을 건다.
주요 가문과 기관8개 기록
기사 가문. 무력으로 유로파를 떠받쳐 온 명문이나,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기질 탓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최전방을 지키는 자리에 섰다. 북방 우레발굽 부족의 남하를 정면으로 막아내는 방패. 데 라 베라와 더불어 유로파 양대 무력 가문으로 꼽혀 왔다.
외교와 행정의 가문. 유로파의 복잡한 가문 관계를 조율하고 질서를 감찰하는, 연합의 행정 척추. 화려하지 않으나 이 가문 없이는 의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학문의 최상위 가문. 근원학을 체계로 세우고 로그오스를 설립한 유로파 지성의 정점. 가문의 권위는 영지나 군대가 아니라 지식에서 나온다.
본래 평민 광부 집안. 콜레트 르페브르가 근원에 닿았음을 증명해 작위를 받은 뒤, 집안 전체가 신흥 귀족 가문으로 인정되었다. 유로파에서 혈통을 이겨내고 귀족이 된 드문 사례. 그래서 가문의 격은 낮고, 본인들조차 귀족보다 광부의 정체성을 더 가깝게 여긴다.
사제이자 장인의 가문. 의지로 형상을 빚어 자격 있는 자에게 장비를 건넨다. 모든 작품에 의도적인 결함을 새겨, 그것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영웅의 무구가, 감당 못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되게 한다. 신화의 무구를 만드는 손이되, 영지도 군대도 탐하지 않는다.
유로파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은 땅의 가문. 산의 광맥과 초원의 곡창을 혼인으로 합친 이래, 유로파의 빵과 철 대부분이 이 가문의 영지에서 난다. 의회 의결권의 핵이자 연합의 곳간.
근원학의 전당. 능력의 표면 아래를 끝까지 파고들어 자기 힘에 대한 답을 찾는 법을 가르치는 기관. 이곳의 목표는 졸업장이 아니다. 근원에 닿고, 그곳에서 내린 답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것을 해낸 극소수만이 근원자의 이름을 얻는다. 대부분은 닿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난다. 문은 사실상 귀족에게만 열려 있으나, 아주 드물게 재능 하나로 그 문을 넘는 평민도 존재한다.
단일 지도자도 공통 헌법도 없는 유로파에서, 가문들이 모여 연합의 일을 의논하는 유일한 장.
북방

가장 깊이 망가진 땅. 힘을 몸 안에 가둬 육체 그 자체를 바꾼 전사들이 부족으로 산다. 사람과 싸우기 전에 괴물과 싸우며 자라고,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된다.
북방인들 사이에는 언젠가 흩어진 부족을 하나로 묶을 단 하나의 칸이 온다는 예언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주요 부족3개 기록
광활한 평원을 지배하는 북방 최대 부족. 내재 강화를 밀도와 중량에 집중시켜, 몸을 무겁고 단단하게 만들어 부딪치고 짓밟는다. 위계가 가장 철저한 부족으로, 강함이 곧 서열이며 명령은 절대적이다. 남하 원정이 잦아 진군로에 놓인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변이체든 가리지 않고 부수며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가시거리가 5m 도 되지 않는 오염된 삼림의 사냥꾼들. 내재 강화를 감각과 은신으로 발전시켜 체온과 소리와 기척을 지운다. 사냥의 전통을 부족의 근간으로 삼으며 숲의 변이체조차 그들에게는 사냥감이다.
북방의 해안선과 빙해를 장악한 부족. 내재 강화를 끈질긴 지구력과 놓지 않는 힘으로 길러, 빙해의 거대 변이체를 작살로 잡아 살아간다. 며칠이고 줄을 놓지 않는 싸움이 이들의 일상이다. 도전과 결투를 명예로 여겨 족장 자리가 자주 바뀌며, 오늘의 족장이 내일 끌려 내려오는 일이 흔하다.
대한민국

세계가 무너지는 동안 시스템을 지켜낸 기업 국가. 능력은 재능이 아니라 자원이다. 약한 능력도 맞는 자리와 장비를 만나면 쓸모가 된다.
주요 기업3개 기록
방산과 중공업을 맡는 기업. 높은 신뢰성으로 제작된 장비와 병기는 전 세계 군수 시장에서 명품으로 통한다. 그들은 능력이 아니라 강철을 믿는다. 변덕스러운 이능력보다, 몇 번을 써도 같은 값을 내는 장비가 진짜라는 철학. 거인이 없는 나라가 거인과 맞설 수 있는 것은, 이 기업이 쥐여 주는 강철 덕분이다.
보안·경호·전술 파견을 파는 민간 군사 기업. 계약서에 작전 범위를 명시하고, 범위 밖의 일은 하지 않는다. 용병이라 부르면 외근직이라 정정한다. 깐깐하고 정확한 계약 조건으로 악명 높은 것으로 유명. 다만 서비스는 확실하다.
수송과 인프라를 맡는 기업. 한국의 전력망과 통신망 일부를 운용하며, 핵심 사업은 글로벌 물류다. 국경이 무너지고 변이체가 들끓는 세계에서 병력과 물자를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옮기는 곳. 한국의 근간을 쥔 셋 중 유일한 외국계이며, 설립자의 이력도 재단의 자금줄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수상하지만, 가장 필요한 곳.
세계가 무너지고, 서로 다른 질서가 남기까지.
우주의 힘이 갈 곳을 잃고 넘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오랫동안 인류는 잘못된 질문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힘을 발견했는가.' 인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았다. 그저, 넘쳐흐르는 무언가의 경로에 있었을 뿐이다.
우주의 에너지는 138억 년 동안 물질 안으로, 공간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스며들 곳이 없어졌다. 갈 곳을 잃은 힘은 마지막 빈틈을 찾아냈다. 우주에서 가장 정교하고 밀도 높은 에너지 처리 구조. 생물의 신경계였다.
넘친 힘이 사람 안으로 흘러들었다. 능력자의 시대가 열렸다.

변화는 사람에게서 먼저 왔다. 에너지가 흘러들기 쉬운 신경계를 가진 이들이 힘에 눈떴다. 기준도 이유도 없었다. 누군가는 재능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결함이라 불렀다.
그리고 변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계절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짐승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세계라는 그릇 자체가, 넘친 힘에 젖어들고 있었다.
핵보다 강한 개인들이 충돌했고, 세계는 그 힘을 버티지 못했다. 물리 법칙이 부서진 균열지대가 그 흉터다.

국가들은 각성자를 제도에 담으려 했고, 대부분 실패했다. 핵보다 강한 인간을 담을 틀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도 전쟁을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판단이, 서로의 생존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단일 전선도, 시작한 날도, 끝난 날도 없다. 인간이 깃발 하나 들고 도시를 접수하던 시대. 영웅과 괴물은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이 싸우는 동안, 세계의 변화는 가속했다. 수백의 각성자가 포화된 에너지를 끌어당기고 비틀 때마다, 이미 금이 간 그릇은 사방에서 두드려졌다. 여름에 눈이 내렸다. 중력이 어긋났다. 짐승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었고, 교란이 심한 땅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 되었다.
승자 없이 전쟁이 멎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각자의 질서를 세웠다. 그것이 지금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발명하지 않았다. 각자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 마지막까지 사람을 먹이고 지켜낸 방식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유럽은 가문으로, 북방은 부족으로, 한국은 시스템으로. 그리고 어떤 곳은, 끝내 아무것도 다시 세우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으로 사라졌다.
전면전은 없다. 그러나 이 평화는 합의가 아니라 소진의 결과다. 균열이 봉합된 것인지, 그저 멈춘 것뿐인지 아는 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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